금향단 뿌리탐구 > 금향단
         

금양단은 해주군, 동복군, 보성군 3군의 신위를 모신 곳이며 오씨 지방의 유림들이 매년 음력 3월 6일 12시에 향사를 올리고 있다.

삼군(三君)은 우리 오씨(吳氏)의 선조(先祖) 해주군(海州君) 극재(克齋) 현보(賢輔)와 동복군(同福君) 덕재(德齋) 현좌(賢佐) 그리고 보성군(寶城君) 성재(醒齋) 현필(賢弼) 삼형제(三兄弟)를 말하며. 동방시조(東邦始祖) 무혜공( 惠公) 첨(瞻) 할아버지의 24세손이고 문양공(文襄公) 연총(延寵) 할아버지의 6세손이다.

해주군(海州君)은
서기1218(고려 고종 5)년 봄에 거란(契丹)이 고려(高麗)를 침입하여 철령(鐵嶺)을 넘어 청천강(淸川江),대동강(大同江) 지역까지 쳐들어오자 해주은 그 해 9월에 좌군병마사(左軍兵馬使)로 서북면(西北面) 원수(元帥) 조 (趙沖)과 현좌(賢左),현필(賢弼)을 대동하고 출전(出戰)하여 거란군(契丹軍)의 10만대군을 격퇴(擊退)시켜 큰 공을 세웠다. 서기1219(고려 고종 6)년에는 시국(時局)의 혼란(混亂)을 틈타 의주(義州) 방에서 반란(反亂)이 일어나 의주별장(義州別將) 한순(韓循) 랑장(郞將) 다지(多智)가 자칭(自稱) 원수가 되어 각 지방을 공략(攻略)하자 서북면(西北面) 병사(兵使)로 상장군(上將軍)으로 있던 해주군(海州君) 현보(賢輔)는 군병마사(中軍兵馬使)김취려(金就礪)와 아우 현좌(賢佐), 현필(賢弼)을 대 (帶同) 출전(出戰)하여 반란군(反亂軍)을 진압(鎭壓)했다.

그 후 서기1223(고려 고종 16)년에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事)직에 이르렀다. 이상과 같은 공훈(功勳)으로 삼군(삼군) 선조(先祖)님은 가각 봉군(封君) 사읍(賜邑)하였다. 이 때부터 봉군(封君) 지명(地名)을 따라 해주(海州),동복(同福),보성(寶城)으로 관향(貫鄕)의 시원(始源)이 되었다.

※참고(參考)로 해주군의 휘(諱)가 국사(國史) 사기(史記)에는 오응부(吳應夫) 또는 오응부(吳應富)로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參考)하기 바란다.

이러한 삼군(三君) 선조(先祖)님의 호국(護國)정신(精神)과 충효(忠孝) 사상(思想)을 추모(追慕)하고자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에 삼충사(三忠祠)를 건립(建立)하여 매년 제향(祭享)을 지내 오던 중 중세(中世)에 이르러 철반(撤毁 : 걷어 없어짐)되었다.

▶ 해주군,동복군,보성군을 설단하여 錦陽壇(금양단) 이라함. 1966年 三君의 묘가 실전한지 오래라, 후손된 자로 報本할 곳이 없어 恨이 되어 설단하여 享祀하고자 여러 종친들이 힘을 모아 조상을 숭상하고 종친간의 화목함을 목적하여, 전남 곡성군 덕산사 문양공 할아버지 享祀때 논의가 되어, 三君 후손 대표로 해주군 후손 윤환(潤煥), 동복군 후손 영탁(榮鐸), 보성군 후손 동식(東植), 諸氏 등이 적극 추진하시어 三君을 설단하고 공주군 儒道會의 제의로 이름을 錦陽壇이라 하고, 매년 陰曆 3월 6일에 공주 儒道會가 參席하는 성대한 祭享을 지내고 있다.

[위치 : 충남 공주군 장기면 신관리산]

그러므로 위와 같이 빛난 공훈(功勳)을 남기신 삼군(三君) 선조(先祖)는 우리 전국(全國) 오씨(吳氏)들의 조상(祖上)이시다.

그분들의 빛난 얼과 훌륭하신 호국(護國) 정신(精神)과 충효(忠孝) 사상(思想)을 길이 추모(追慕)하고 천추(千秋) 만대(萬代) 무궁(無窮)토록 추모(追慕)하기 위해 백제(百濟) 고도(古都) 공주시(公州市) 신관동(新官洞) 취리산(就利山 남쪽 기슭에 삼군영단(三君靈壇)을 설단(設壇)하고 그 명칭(名稱)을 금양단(錦陽壇)이라 칭하였다.

이 곳은 전국(全國)의 중앙(중앙(中央) 지점(地點)이며 삼군의 후손들이 거(世居)하고 있으며 해주군 후손 윤환(潤煥),동복군 후손 영탁(榮鐸),보성 후손 동식(東植) 등이 설단(設壇)을 발의(發議) 주선(周旋)하여 서기1967년 2월에 봉단입석(封壇立石)하였고 공주 유림(儒林)에서 유림봉사(儒林奉祀)로 후손들과 매년 음역(陰曆) 3월 6일에 봉향(奉享)하고 있다.

또한 우리 선조님의 혼(魂)이 서려 있는 이곳 금양단(錦陽壇)을 영원(永遠)토록 관리(管理) 보존(保存)하기 위하여 1993년 7월11일 사상초유(史上初有)로 공주에서 오씨(吳氏) 종친회(宗親會)를 창립(創立)하였으며 이를 공고(鞏固)히 하고자 금양단(錦陽壇) 아래에 회관(會館)을 건립하기 위하여 5億여원의 재원(財源)을 목표로 현재 사업(社業) 추진(推進) 중에 있으므로 우리 종친(宗親)들은 물심양면(物心兩面)으로 적극(積極) 협조(協助)하여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둘 수 있도록 바라오며 장차(將次) 이곳이 숭조사고(崇祖思考) 의 도장(道場)이 되고 금양단(錦陽壇)이 성역화(聖域化)되여 역사(歷史)의 증처(證處)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