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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 득성 시원
오씨가 세대로 살아온 사적
오씨가 동방으로 오게 된 사적
장화왕후
오연총
   

 문양공 오연총 영정

(文襄公 吳延寵 影幀)(1055~1116)   

고려부원수(高麗副元帥)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

시호 문양(文襄) 문과에 급제하고 1096년(숙종 1)
요(遼)나라의 천안절(天安節)에 축하사절로 다녀와서 1098년 기거랑(起居郞)에 이어 병부낭중(郞中)이 되었다.

1100년 상서(尙書) 왕하(王)와 함께 송제(宋帝)의 등극 축하 사신으로 갔다가 희귀본《태평어람(太平御覽)》을 구해 가지고 돌아와 왕에게 칭찬을 받고 특별히 중서사인(中書舍人)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외직(外職)을 청하여 전주(全州)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치적을 올렸다.

예종 초에 추밀원지사·어사대부·한림학사·승지를 역임하고 동북면병마사 겸 행영병마사로 나갔다가 검교사공·행부상서로 전임되었다.

1107년 부원수가 되어 윤관(尹瓘)과 함께 여진을 소탕하여 협모동덕치원(協謀同德致遠) 공신으로 상서좌복야 ·참지정사가 되었다.

그후 웅주성(雄州城)에 침입한 여진을 격퇴하였으나 1109년 길주성(吉州城)에서는 실패하여 화의를 맺고 돌아왔다.

이를 재상 최홍사(崔弘嗣) 등이 문제삼아 탄핵하여 파직되었다가 다시 회복되어 1110년 수사공(守司空) ·중서시랑평장사로 기용, 수사도(守司徒) 수태위(守太尉), 감수국사상주국(監修國史上柱國)을 거쳐서 이부 ·예부 ·병부의 판사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