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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씨 득성 시원
오씨가 세대로 살아온 사적
오씨가 동방으로 오게 된 사적
장화왕후
오연총
오(吳)는 본시 희성(稀姓)이다.

처음에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를 이기고 마침내 태백(泰伯 : 주태왕의 첫째아들)과 중옹(仲雍 : 주태왕의 둘째아들)을 오(吳)땅에 봉하니 서로 전하여 19세에 이르러서 수몽(壽夢)이 비로소 왕이라 일컬었다.

뒤에 6군(君)이 있었으며 부차(夫差 : 춘추때 오의왕. 월을 쳐서 아버지인 오왕 합려의 원수를 갚았으나, 후에 월왕 구천에게 크게 패하자 자살함)에 이르러 월왕(越王) 구천(句踐 : 춘추때 월의왕. 오왕 합려를 죽인 뒤 합려의 아들 부차한테 회계산에서 사로잡혀 굴욕을 당한 후,와신상담 한끝에 오(吳)를 쳐서 멸망시킴)에게 멸망하게 되었으니 모두 25세에 이르렀다.

태백(泰伯)과 중옹(仲雍)이 있었으니 계간(季簡)>숙달(叔達)>주장(周章)>웅수(熊遂)>가상(柯相)>강구이(疆鳩夷)>여교의오(餘橋疑吾)>가로(柯盧)>주요(周繇)>굴우(屈羽)>이오(夷吾)>금처(禽處)>전(轉)>파고(頗高)>귀비(卑)>거제(去齊)>수몽(壽夢)

수몽은 아들이 4인이니 저번, 여제, 이매, 계찰이요.
저번의 아들은 합려(闔閭)요, 그의 아들은 부차(夫差)이다.

월(越)이 오(吳)를 멸망하고 부차의 아들 이의(夷義)를 오에 봉하여 식읍(食邑)으로 2읍을 내려 주어서 그 선조를 제사하게 하였다.

그뒤에 이의의 아들 누양이 위(衛)에 들어가니 위후(衛候)가 이르기를 "본시 오(吳)나라 사람이다." 하고 오(吳)를 사성(賜姓)하니 이로부터 오씨가 비로서 세상에 드러났다.

고증(考證)하건대, 춘추절서편(春秋絶書篇)에 오누양이 있으니 누양은 부차의 손자이다.

누양의 뒤에 오공 기(起)가 있고 기의 뒤에 오공 첨(瞻)이 있어 후세에 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