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는 사마천이 중화사관의 관점에서 기록한 역사서로 왜곡된 내용이 적지 않다는 것이 한국 재야 사학자들의 일관된 주장이다. 사기에 기록된 오태백세가 역시 왜곡이 전혀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따라서 사기의 기록을 왜곡이 비교적 적은 오월춘추와 비교하면서 보는 것이 필요하다. 태백은 왕위계승문제로 주부락에서 도주하여 처음에 주부락에서 서쪽으로 100km떨어진 가까운 오산으로 갔는데 그곳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씨부족이 터를 닦고 살고 있던 곳이다. 태백은 그곳의 오인들의 도움을 받아 은거하였으며 후에 오산의 오인들은 태백을 따라 먼 남쪽의 강소성 무석 매리로 가서 태백을 도와 오국을 새웠다.
태백과 동생 중옹은 모두 주나라 태왕의 아들이며 계력의 형이다.계력은 어질고 성자 창이 있다. 태왕은 왕위를 아들 계력을 통해 창에게 계승하기를 원하였다. 그리하여 태백과 중옹은 형만으로 달아나 문신과 단발을 함으로서 자신들이 왕위에 오를 수 없음을 보여 결국 계력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후에 그의 아들 창이 왕위를 계승하여 문왕이 되었다. 태백은 형만으로 가서 자신의 호를 구오라 하였다. 형만인들이 그를 존귀히 여기며 따르는 자가 천여호가 되었고 태백을 그들의 수령으로 옹립하였다. 태백이 자식이 없이 죽자 동생 중옹이 계승하여 오중옹이 되었다.